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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이레 |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의 기술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사소하지도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
여행의 위험은 우리가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
즉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물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정보는 꿸 사슬이 없는 목걸이
구슬처럼 쓸모없고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된다.
도시의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가운데서
마음이 헛헛해지거나 수심에 잠기게 될 때
우리 역시 자연을 여행할 때 만났던 이미지들,
냇가의 나무들이나 호숫가에 펼쳐진 수선화들에 의지하며,
그 덕분에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의
힘들을 약간은 무디게 할 수 있다.
만일 세상이 불공정하거나 우리의 이해를 넘어설 때,
숭고한 장소들은 일이 그렇게 풀리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바다를 놓고 산을 깍은
힘들의 장난감이다. 숭고한 장소들은 부드럽게
우리를 다독여 한계를 인정하게 한다.
사막을 건너고, 빙산 위를 떠다니고, 밀림을 가로질렀으면서도,
그들의 영혼 속에서 그들이 본 것의 증거를 찾으려 할 때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는
먼 땅으로 떠나기 전에 우리가 이미 본 것에 다시 주목해보라고
슬며시 우리 옆구리를 찌르고 있다.